※하나하키병 소재입니다.


황립 전력 90분 주제 '꽃' 받아 썼습니다.

역시 제목은 지을 줄을 몰라서 소재 그대로... 헤헤헤^^;




[황립] 꽃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면 부족으로 머리는 띵하고 가슴은 답답하고 속은 울렁거렸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눈을 뜬 키세는 습관대로 핸드폰부터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40분. 아침 연습은 완전히 놓칠 시간에 놀라 벌떡 일어나자마자 신물이 울컥 올라왔다. 욱, 하고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마자 변기에 고개를 박을 새도 없이 목 밖으로 내용물이 쏟아졌다. 우웩, 콜록콜록. 눈을 질끈 감은 채 진정될 때까지 뱉어내며 키세는 아침 연습에 대해 생각했다. 일찍 일어났어도 이래서야 연습은 못했겠네…… 아, 참. 오늘은 연습 없었나. 어느새 찔끔 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 키세는 그제야 수면 부족의 원인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졸업식 날이었다. 1년을 꽉 채우기도 전에 3학년과의 이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농구부 주장인 카사마츠 유키오에 대한 키세의 감회는 남달랐다. 모델이라거나 기적의 세대라거나 하는 꼬리표 대신 카이조 고교 농구부 1학년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키세에게 달아준, 말하자면 대부와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카사마츠 선배한테는 제가 꽃을 달 거예요! 1, 2학년 농구부원들에게 선전포고하듯 못을 박아놓긴 했지만, 종이꽃도 성심성의껏 만들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솔직하게 속내를 말하자면 ‘좀 더 같이 농구하고 싶습니다! 유급하면 안 돼요? 재수라도 괜찮아요!’였지만 돌아올 것은 플라잉 니킥일 게 뻔해서 그만두었다.

그럼 하다못해 누구보다 좋은 후배로 남도록 듬직하고 멋들어진 말을 건네고 싶었다. 겹겹이 쌓아 올린 감사를 고스란히 담아낼 말을 고민하며 잠까지 설쳤다. 머릿속은 온통 카사마츠로 가득 찼다. 첫 만남부터 세이린전, 인터하이, 윈터컵에 이르기까지 카사마츠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다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가 이렇게나 선배를 존경할 줄은 몰랐는데, 하고 스스로도 머쓱할 정도였다. 그리고 뻔한 인사말로 타협하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딱 3시간밖엔 못 잤지만.


이렇게나 생각해주는 후배가 있어 선배도 행복했을 거야. 그렇죠?

멋대로 생각하며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키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뜬금없는 노란 꽃이었다. 푸른 꽃줄기에 꽃송이 세 개가 매달려 있었고, 꽃송이는 네 장의 꽃잎이 동그랗게 겹쳐져 마치 작은 달처럼 보였다. 어, 이게 왜……? 멍하니 들여다보던 키세의 머릿속에 졸업식이 스쳐 지나갔다.

10시부터랬나? 그럼 카사마츠 선배는 9시에 등교할 텐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몸을 일으키려다 키세는 묵직하게 내려앉는 가슴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라? 어라아? 의미 없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동안 가슴은 방망이질하고, 머릿속은 눈앞의 꽃과 카사마츠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려댔다. 어어어……?! 답을 내리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뚝뚝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야 키세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별을 코앞에 두고.



키세 료타는 꽃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여자들이 주는 꽃 선물을 싫어했다.

- 저거 죄다 자기가 뱉은 걸걸요. 대체 자기가 토한 걸 선물이랍시고 주는 게 이해가 안 돼요. 더럽잖아요.

중학교 때 왜 꽃 선물은 한사코 거절하냐는 질문에 키세가 대답했을 때, 쿠로코는 그런가요, 하고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 전 낭만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낭만?! 쿠로콧치, 그건 아니라구요!

- ‘마음을 전한다’는 말을 형태로 만들면 바로 그 꽃 선물일 겁니다. 소설 같지 않나요.

- 으음…… 그래도 전 싫어요!

- 각자 좋고 싫음이 있으니까 이해합니다. 키세 군도 꽃을 뱉게 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요.

- 설마!


그때의 대화가 왜 이제 와서 떠오르는지 키세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왠지 저 노랗고 둥근 꽃을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한참을 소리도 못 내고 울어재낀 키세는 더러운 것을 집듯이 엄지와 검지만으로 꽃줄기를 들어올렸다. 토사물치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게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는 대신 키세는 수돗물에 꽃을 씻어내며 거울을 봤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교정 구석의 울타리나무에 몸을 숨긴 채 카사마츠가 등교하기를 기다리는 내내 키세는 왼쪽 주머니에 든 꽃의 감촉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있었다. 농구부 1, 2학년들과 함께 만든 종이꽃이었다. 뭐든 곧잘 하는 키세였지만 종이꽃 만들기는 별개였다. 십여 개의 꽃을 버리고 나서야 제법 잘 만든 종이꽃을 만들 수 있었다. 존경하는 선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만든 꽃을 만지작거리던 키세는 곧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들고 나온 노란 꽃은 차마 망가질까 주머니에 넣지도 못했다. 이걸 들고 와서 뭘 어쩌려고. 자조하던 키세는 곧 등교한 하야카와가 교문에서 모리야마를 막아서는 모습을 지켜보다, 곧 화려한 돌려차기와 함께 교문으로 들어선 카사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피곤한 얼굴로 하야카와와 모리야마를 지켜보던 카사마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무는 순간, 키세는 지금이 꽃을 달아줄 적기라는 것을 알았다. 카사마츠를 부르고, 겨우 인사를 하고, 이 와중에도 감동을 주는 카사마츠 때문에 목이 꽉 조여오는 것을 참아낸 키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다행히 종이꽃의 모양은 온전한 듯했다. 그대로 종이꽃을 꺼낼 생각이었다. 그때 곧은 눈으로 응시하는 카사마츠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눈을 보는 순간 키세는 쭉 내리고 있던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종이꽃에 붙은 옷핀만 떼어 꺼냈다. 가만히 선 카사마츠의 가슴에 그 노란 꽃을 대고, 왼손의 옷핀으로 조심스레 고정했다. 멋대로 착착 움직이는 몸에 머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카사마츠는 키세의 굳은 얼굴을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생화냐? 너치곤 나름 예쁜 꽃 가져왔네.”

속도 모르고 씩 웃는 카사마츠에게, 키세는 말없이 마주 웃어 보였다. 키세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였다.

저기, 카사마츠 선배. 후배로서의 감사 대신 사랑을 몰래 가슴에 달아주는 건 비겁한가요? 그래도 저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쿠로콧치가 말했던 거…… 정말 죽도록 낭만적이에요.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온 키세는 수북할 정도로 꽃을 쏟아냈다. 화장실 바닥에 한가득 뿌려진 꽃에 누나들은 기가 막힌 얼굴로 핀잔을 주었다.

“키세 료타 한물갔네. 너 정도 되는 애가 짝사랑이니?”

“……시끄러워.”

“게다가 큰달맞이꽃이 다 뭐야. 너 저거 꽃말이 뭔지 알아?”

알 리가 없는 키세가 눈만 깜박이자 큰누나가 핸드폰 화면에 뜬 내용을 읽어주었다.

“말 없는 사랑, 기다림, 소원. 짝사랑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네, 소문을.”

멍하니 듣던 키세는 푸핫 웃어버렸다. 말하지 않는 비겁함까지도 놓치지 않고 키세의 마음을 고스란히 형태로 만든 꽃이었다. 그러니 버리질 못했지. 다시 눈물이 날 만큼 웃는 키세를 보며 누나들은 중증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


졸업식이 한 번 더 지나가고, 마침내 키세가 졸업식을 맞게 되었다. 어김없이 아침부터 꽃을 뱉은 키세는 참 질리지도 않네, 하고 자신의 마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야 질릴 수가 없다. 같은 농구부에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 후로도 카사마츠와 연락을 하고, 때때로 만나기도 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카사마츠는 대학 농구부와 길거리 농구팀을 병행하면서도 키세가 떼를 쓰면 결국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나주곤 했다. 정말 속도 모르고. 이제는 익숙해진 노란 꽃을 치우고 학교로 향하며 키세는 재작년의 졸업식을 떠올렸다. 역시 그때 종이꽃도 같이 달아줄 걸 그랬나, 존경은 존경이고 사랑은 사랑인데. 뒤늦은 후회를 하며 교문을 통과할 때였다. 옆에서 확 끌어당기는 손길에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끌려간 것이다.

“어어?!”

“여, 키세. 졸업 축하한다.”

“카, 카사마츠 선배……?!”

당당하게 사복 차림으로 교문 안쪽에 서있던 카사마츠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놀란 키세가 굳어있을 때, 키세를 노리고 일찍 와있던 여학생들과 농구부 후배들도 같이 굳어있었다.


“어, 어쩐 일로 교문에 계셨어요?!”

“나는 너랑 달리 교문에 서있어도 법석 떨 사람이 없어서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후배들한텐 미안하지만, 너한테 꽃이나 달아줄까 해서.”

“네?!”

“전에 나한테 달아준 꽃 답례로.”

카사마츠는 청자켓 주머니에서 길쭉하고 둥근 덩어리를 꺼내더니 키세의 가슴팍에 엉성하게 꽂아주었다. 가뜩이나 시선이 몰려 있는 마당에 꽃 같지도 않은 걸 꽂아주니 다른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따갑게 들려왔다. 세상에, 저게 뭐야. 괴롭히는 건가? 장난인가?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는 것처럼 뻔뻔한 얼굴로 선 카사마츠를 키세가 한 번 보고, 가슴팍의 물체를 한 번 보았다. 아, 이거 그거구나. 알아차리자 절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카사마츠가 가슴에 달아준 것은 솔꽃이었다. 소나무를 성으로 달고 있는 카사마츠가 일부러 들고 온 꽃이다. 그게 카사마츠의 마음을 형태로 만든 꽃이라는 걸 놓칠 리 없었다. 목 놓아 울기 시작한 키세에게 카사마츠는 아무튼 울보라니까, 하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주인을 닮아 꽃처럼은 보이지도 않는 투박한 꽃은 키세의 가슴을 독차지하고 앞으로도 계속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 END




하나하키병 소재로 썰로 풀었던 내용인데 마침 전력 소재가 꽃이라 이걸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막상 써보니 썰로 놔두는 게 나았나 싶긴 한데 키세가 뱉는 꽃을 정한 것에 의의를 둬 봅니다...

큰달맞이꽃 큰 건 진짜 큰데 그럼 키세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적당한 크기로 생각해주세요(..

카사마츠 솔꽃도 적당한 크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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