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break
마본과 티오의 힘은 타카미네 키요마로에게 쓸 데 없이 굉장한 신체능력을 부여했다. 상처 하나 없이 몸을 움직여 반란분자를 베어나가는 과정은 이제 기계적인 느낌까지 주었다. 다른 마물들도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평화롭게, 적어도 13살까지는 평화롭게 살아왔던 키요마로로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베어버린 머릿수가 두 자릿수를 돌파한지 꽤 지났을 때에야 난장판은 대체로 정리되었다. 이 무렵 검날도 뼈와 살에 무디어져 거의 둔기 수준이 되어 있었다. 키요마로는 막 할당량(?)을 해치운 제온에게 잔당 처리를 떠넘기고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가장 안쪽의 집무실로 향했다. 피에 젖어 찜찜한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만 보고가 우선이다. 베는 것만 보여주지 않으면 됐지, 뭐. 키요마로는 쓴웃음 짓고는 노크했다. 조금 잠긴 소리를 내며 '들어오게'하고 허락하는 갓슈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달칵 문을 열고 몸을 밀어 넣으면, 갓슈의 눈동자가 돌연 커졌다.
"키, 키요마로!!"
"무슨 호들갑이야."
쏘아붙이면 갓슈는 당황해 옷에 묻은 핏자국을 가리키며 외쳤다.
"다쳤는가?!"
"전혀. 전부 다른 녀석들의 피니까 멀쩡해."
키요마로는 잘라 말하고는 경과보고를 했다. 반란군의 리더는 브라고의 손에 요절났고, 제온이 가장 많은 수를 처리했고, 남은 인원은 얼마이며, 1시간도 안 되어서 정리될 예정이라는 것까지 덧붙였다. 정확성은 자신한다. 괜히 앤서 토커의 이름을 달고 살던가.
"허면 다들 무사한가?"
"대체로. 찰과상이라든지 타박상 정도로 위험할 녀석들은 여기에 없고, 브라고를 비롯한 군부 쪽의 부상은 티오에게 곧 치료받아서 완치됐어. 티오도 큰일이었지, 방어선도 몇 겹으로 쳤는데."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마왕성 주변에 하나, 적이 갓슈를 공격할 수 없도록 집무실에 하나. 거기에 의료반 보호용으로 하나,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른 방어주술까지. 피곤에 몸이 무너질 것 같아 보였다. 하루 정도는 레이라와 제온으로 방어막을 칠 수 있으니 내일까지는 티오를 쉬게 해야 한다고 말하자 갓슈는 동의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키요마로, 정말 괜찮은겐가?"
"레이라와 제온은 우수하니까. 여차하면 코루루에게도 방어를 부탁하면……"
"아니, 키요마로 말일세."
"응?"
"아픈 듯한 얼굴이지 않은가."
키요마로는 할 말을 잃었다. 터무니없이 둔한 주제에 이런 부분만 예리해 약한 부분을 쥐어잡는 갓슈를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14살, 평화 대신 싸움에 말려들고 자신이 그쪽을 선택했을 때부터, 키요마로는 그런 갓슈까지 긍정했던 것이다.
"키요마로?"
"멀쩡해."
키요마로는 쥐어짜내듯 간신히 말했다.
"몸은 멀쩡해, 갓슈."
키요마로는 담담한 손놀림으로 제복 상의단추를 풀어내렸다. 그러면 혈흔이 없는 깨끗한 셔츠가 드러나, 키요마로의 말을 입증했다. 키요마로는 심호흡을 하고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가슴이 아파."
분명 미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자신을 알아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 자신은 오늘처럼 계속 갓슈와 마계를 위해 살육을 하게 될 것이고, 아마 자신은 그것을 누군가가 못하게 막아도 보좌관의 역할과 권위를 내세워 해낼 것이고, 아마 자신이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상처 입을 마음은 여전히 14살 때부터의 자신의 왕에게 기대려 한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갓슈는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고, 대신 가만히 키요마로를 끌어안아 주었다.
Heartbreaker
갈가리 찢겨진 몸으로도 그는 웃는다. 산산이 부서질 듯한 얼굴을 하고서도, 괜찮다며 안심시키려 든다. 키요마로의 그런 점을 갓슈·벨은 잘 알고 있었다.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키요마로가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얼굴이나 체격은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지만 그마저도 마계의 존재가 된 이상 변하지는 않을 것이고, 성격은 변한 곳조차 없다. 조금 더 약은 체를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을 텐데.
반란이 일어났을 때 갓슈가 가장 걱정한 것은 키요마로였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반란을 예상하고 받아들인 갓슈와는 달리, 키요마로는 쓸데없이 완벽주의자였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리라.
반란에 대해 가장 괴로워 할 사람이 자신에게 말했다. 넌 닥치고 가만히 집무실에 처박혀있어, 내가 처리하고 올 테니까. 키요마로의 고집을 역시 잘 알고 있는 갓슈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옥죄이는 듯 했다. 닫히는 문 사이로 키요마로가 웃어 보였다. 나갈 수 없고 말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주 웃어주었다.
키요마로는 조금 안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생각해보면 형편없는 파트너인 자신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키요마로를 갓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헌신적인가. 어째서 이렇게나 자신보다 내게 충실한가. 물어도 만족할 만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게 뻔했다. 영혼의 반쪽이라고 잘난 듯이 떠들어도 키요마로의 깊은 속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 그 사실이 분하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안타까운 것보다는 솔직한 감정표출이 가능했을 터다.
닫힌 집무실에서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온과 티오, 브라고 등의 마물을 불러낸 키요마로는 지시를 내리고 스스로 전장에 뛰어든다. 아마, 무사할 것이다…겉모습 정도는. 가슴이 잘게 조각나는 것 같았다. 가장 지키고 싶은 이에게 지켜지고,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앞으로도 쭉 지켜봐야 할 심장이 비명을 지른다.
"키요, 마로……."
띄엄띄엄 늘어놓은 네 음절은 이 세계의 왕을 끝장 낼 유일한 단어.
숨이 막힐 듯이 지끈대는 통증 사이에서도, 그 애틋한 느낌의 이름에 갓슈는 처연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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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오래된 글이라 올리면서도 민망하네요☞☜
키요마로는 갓슈에게 치유 받아도 갓슈는 치유 받지 못할 정도로 자란 걸 쓰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강한 척하는 키요마로에게 구원받았던 갓슈라지만 예의 피의 발렌타인 때문에 그게 허세인 걸 뼈저리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키요마로는 갓슈의 heartbreaker라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