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LAST GAME 스포 주의
※상/하편 중 하편입니다.
흑우 전력 60분 주제 '짝사랑' 받아 썼습니다.
[화흑] 짝사랑下
Kuroko Side
두 사람과 한 마리뿐인 거리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고, 곧 한 사람이 멍하니 굳어버린다. 망연한 상대의 얼굴도, 중얼거리는 상대의 목소리도 여름 햇살과 매미 울음소리는 가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쿠로코는 작년 늦가을쯤부터 되풀이하며 상상해온 일이 일 년 반이나 일찍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쿠로코는 영원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인연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그렇기에 만남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여겼다. 카가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침 NBA 선수라는 꿈과 그에 걸맞은 재능을 지닌 카가미가 미국에 눌러앉는 건 필연적인 미래였다. 윈터컵 전 카가미가 알렉스의 지도를 받으러 미국에 가있는 동안 쿠로코는 약 9,000km의 거리에 대해 생각했다. 기껏해야 1m 거리에 있던 상대가 이렇게 쉽게 까마득히 멀어진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행히 이번에는 훈련이었지만, 당장 다음은 스카우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지요.
조용히 다짐하면서도, 쿠로코는 카가미에게서 정을 뗀다는 선택지는 도무지 고를 수 없어 곤란한 얼굴로 웃었더랬다. 쿠로코에게 카가미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은 카가미 타이가가 주저하며 쿠로코를 돌아본다. 쿠로코는 담담히 시선을 맞부딪치며 마음속으로 준비해온 대사를 읊었다. 시무룩한 카가미의 표정을 가뿐히 읽어냈지만 건네는 말에 군더더기는 붙이지 않는다. 곧 긁히는 소리를 내며 어어, 하고 대답하는 카가미에게서 쿠로코는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가방 안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끄응 우는 2호를 쓰다듬고 걸음을 내딛었다. 한발 늦게 뒤따르는 카가미를 돌아보지 않고 쿠로코는 속으로 되뇌었다.
잘 가요.
머지않아 반드시 하게 될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무거워졌다.
**
이별을 연습할 시간에도 농구 연습은 계속되었다. 재버워크와의 결전을 준비하는 동안 카가미는 잘 벼린 칼날처럼 움직였다. 누구보다 높이 뛰어올라 누구보다 강하게 덩크를 내리꽂는 카가미를 보며 쿠로코는 그야말로 보팔소드라고 생각했다.
카가미와는 그 이후로 스카우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간간이 내비치는 카가미의 복잡한 얼굴을 읽으며 열심히 고민하고 있군요, 짐작할 뿐이었다. 누구에게 패스를 던지든 움찔움찔 반응하는 카가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은 쿠로코의 특기였다. 그러나 카가미가 뛰어들어 눈앞을 막아섰을 땐 과연 쿠로코도 무표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달려와 무작정 주먹부터 휘두르고,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을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인 양 등 뒤로 숨기고, 분노한 나머지 말도 꺼내지 못하고 간신히 참고 있고.
팀 메이트라고는 해도 지나치지 않나요. 과보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카가미를 끝내 막지 않은 것은, 그 과보호가 기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카가미의 결정을 들을 때가 왔기 때문에.
카가미는 예상대로 미국행을 선택했고, 쿠로코는 목전으로 다가온 이별에 숨이 턱 막혔다. 최대한 침착하게,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를 들여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면 카가미 군이 없는 농구는 상상했어도 카가미 군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지 않았네요.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쿠로코는 카가미에게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쓰게 웃었다. 이별이란 건 아무리 준비해도 쉽지 않은 듯했다.
**
전날 밤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배웅을 나갔던 터라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후회가 자꾸만 쿠로코를 갉아먹었다. 시뮬레이션대로 되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는 다짐은 깨지고, 입 밖에 낼 생각이 없던 말은 뱉고야 말았다.
저는 계속 당신의 그림자입니다.
카가미는 그 말에 기쁜 듯이 떠나갔지만, 남겨진 쿠로코는 자책을 거듭해야 했다.
작년 늦가을, 카가미의 부재와 함께 어렴풋이 깨달은 감정에서 애써 눈을 돌려왔다. 알아차린 순간 끝이 보이는 연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카가미를 향한 감정을 단순한 호의로 속이며 머릿속으로 매번 이별을 의식하고 거리를 둬야 했다.
당신이 ‘저의 빛’이듯 저도 ‘당신의 그림자’면 안 될까요?
수시로 드는 욕심을 모른 척 삼키며 꿋꿋하게 단지 그림자로 남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한순간에 망치고 말았다. 둔한 카가미는 그 각오의 무게를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쿠로코에게는 중대한 문제였다.
“이래서야 다른 빛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카가미 군의 그림자로 남고 싶다’. 헤어지는 순간 맞닥뜨리고 만 본심이 가슴을 짓눌렀다.
벌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가미가 떠나간다는 사실을 최대한 오랫동안 독점한 이기심, 카가미의 고민을 혼자 알고 있다는 얄팍한 우월감……. 그 대가가 이 가망 없는 사랑의 자각일 줄이야. 쿠로코는 앞으로 깨닫자마자 끝을 맞이한 연심을 혼자 질질 끌게 될 것이었다. 또 패스를 던질 때마다 약 9,000km를 사이에 둔 빛을 자꾸만 찾게 될 터였다.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그래도 만일, 반나절의 시간을 넘어 전화가 울린다면.
그리고 그 전화를 받는다면.
쿠로코는 반짝반짝 빛나는 액정에서 지금쯤 막 미국에 도착했을 카가미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요, 카가미 군. 여긴 한밤중인데요.”
[아, 그렇지. 시차 생각을 못 했어…… 가 아니고! 너 왜 나한테 다녀오라고 안 했냐?!]
“비행기 내리자마자 그겁니까. 이제야 묻는 당신도 참 어지간하네요.”
[너……! 아니, 됐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문제가 아니었어.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까. 나는 꼭 돌아갈 거고, 너랑 만날 거야. 왜냐면,]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르는 것이다.
- END
극장판이 너무 대단해서 제가 많이 초라해지네요
화흑 결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