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LAST GAME 스포 주의
화흑 전력 60분 주제 '카가미군의 생일' 받아 썼습니다.
8월 2일 카가미 생일 축하해!
[화흑] 딱 한마디의
선물은 내용물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들 하던가요. 실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주어도 짐이 될 뿐이고, 자기 만족으로 무작정 떠넘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선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겠지요.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준 수줍은 생일 축하 노래도 전부 저를 기쁘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생일에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는 쪽은 늘 불안하기만 한 게 선물입니다. 당신은 축하한다는 한마디만으로도 눈부시게 환히 웃어줄 사람이니까, 정말로 당신이 기뻐했을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무튼 두 번의 생일을 켕기는 마음으로 보내면서 내년에야말로, 하고 다짐한 지 딱 일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작년, 생일마다 원온원을 해달라던 당신의 요구는 아무래도 들어주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저 멀리서 노력하고 있고, 저는 이번 여름을 끝으로 세이린 농구부를 은퇴하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대학 농구를 할 생각은 없으니, 제 농구 실력은 지금보다도 더 형편없어지겠지요. 그러고 보면 당신이 제게 원온원을 선물로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네요. 그만큼 저와의 농구를 소중히 여겨준 걸까요. 그렇다면 영광입니다.
그동안 당신에게 줄 선물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농구와 마지바를 빼면 취향이 맞지 않으니 선물을 고르기 어렵더군요. 당신이 가까이 있다면 곧 교체해야 할 스포츠용품을 눈여겨보거나 치즈버거를 잔뜩 사주면 됐겠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멀리 있으니 불편함투성이네요. 그래서 어제까지도 당신의 선물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결정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는 선물은 상대방에게 필요하고, 받는 사람이 기뻐해야만 선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선물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기 만족으로 무작정 떠넘기기로 정한 겁니다. 당신에게는 짐이 될 뿐인, 딱 한마디의 말입니다.
당신을 연모합니다.
과연 국어가 엉망진창인 당신이 이 말의 뜻을 알고 있을지 걱정입니다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괜찮습니다. 이건 선물이 아니니까요.
이런 말을 밀어붙여놓고 전하기는 조금 껄끄럽습니다만,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이, 카가미 군이라는 빛이 있었기에 저라는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당신의 앞날이 찬란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쿠로코 테츠야로부터.
미국 생활에 적응한 지는 오래였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반드시 바다 건너에 있는 이를 생각한다. 그래서 카가미는 매일 아침 메일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쿠로코는 너무 빈번하지도, 너무 뜸하지도 않은 간격으로 메일을 보내 왔다. 최근에는 어떤 연습을 하고 있다든지, 어디와 시합을 했다든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다든지 하는 대체로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카가미 군,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부상에 주의하고 건강히 잘 지내세요. 또 메일 보내겠습니다.’ 하고 카가미의 안녕을 빌며 맺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지내냐든가, 그립다든가…… 좀 더 나에 대해서 뭐 다른 할 말도 있지 않냐고. 조금 섭섭하게 생각하면서도 쿠로코가 간간이 보내는 메일을 읽는 날이면 카가미는 그 듬직한 그림자를 날개로 단 것처럼 기운차게 날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만은 조금 다른 내용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8월 2일의 아침이 밝았을 때 카가미는 벌떡 일어나 메일을 열었다. 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연락이 쏟아지기 마련이라, 카가미의 인덕을 증명하듯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수많은 축하 메일이 쏟아지고 있었다. 반가운 발신자도 여럿 보였지만 자칫하면 놓칠 뻔한 이름을 카가미는 놓치지 않고 발견해 메일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느낌표 하나 없이 ‘쿠로코입니다.’라는 밋밋한 제목이었다.
기대한 대로인지, 기대에서 벗어난 것인지, 아무튼 평소와는 다른 내용의 메일을 읽으며 카가미는 시종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어쨌든 생일 축하한다는 얘기인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영 이상했다. 우선 또 메일 보내겠다는 언제나의 맺음말이 없다. 거기에 전체적인 내용이, 공항에서 쿠로코가 ‘잘 가요.’ 하고 인사했을 때와 비슷한, 목에 뭐가 걸린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멀리 떨어져 있다든가, 여름이 지나면 은퇴한다든가, 대학 농구를 하지 않을 거라든가, 농구 실력이 떨어질 거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쿠로코가 선수이든 아니든, 농구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었다. 언제가 되었든 생일에 함께 원온원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림자를 붙들어 맬 약속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완전히 깨트리고, 쿠로코는 선물이 아니라면서 영문 모를 한마디를 ‘떠넘긴다’고 했다. 네가 알아듣기나 하겠냐는 식의 말에는 울컥했지만 정말로 말뜻을 모르는 게 사실이라 반박할 여지도 없었다. 사전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끙 앓는 소리를 낼 때였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히무로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해피 버스데이! 유쾌한 축하 인사를 건네는 히무로에게 고맙다고 대답하면서 카가미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타츠야, 혹시 ‘연모하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
- 응? 갑자기 왜? 누가 네게 말하기라도 했어? 고풍스러운걸.
“고풍……? 아무튼, 무슨 말인데?”
- 하하,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지. 고백이라도 받았나 보네, 타이가.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이었다. 설마, 정말로? 진짜 그런 뜻이야? 히무로에게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멍한 상태로 전화를 끊은 카가미는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로 풀썩 내려놓았다. 사랑하고 그리워한다고, 쿠로코가, 나를……. 놀라긴 했지만 싫기는커녕 전신에 열이 올라 방방 뛰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었다.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빙빙 돌려 말하기는! 그야 못 알아듣긴 했지만! 떠넘긴다느니 밀어붙인다느니 짐이 될 거라느니, 정말이지 혼자 생각이 많은 녀석이었다.
아, 그래서 쿠로코는 꼭 마지막 인사처럼 말한 건가. 혹시라도 내가 알아듣고 자기를 피할까 봐.
거기까지 생각하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 말뜻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했으면 이대로 쿠로코와의 연결은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자 가슴이 마구 울렁거려서, 카가미는 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딱 한마디의 답장을 보냈다.
- 짐이 아니라 최고의 선물이라고!
그러고는 쿠로코가 메일을 읽고 연락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END
화흑은 쌍방 짝사랑이 참 잘 어울리지만ㅋㅋㅋㅋ 한쪽은 자각 있지만 한쪽은 자각 없는 것도 좋음
여기의 카가미는 쿠로코한테 메일 받기 전까지는 자각이 전혀 없던 상태
쿠로코는 메일 보내고 나서는 (쓸쓸하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겁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하고 혼자 정리할 생각이었음
하지만 예상 외로 카가미가 기꺼이 받아주며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었으므로 원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겠지ㅠㅠㅠ
스카이프 대신 메일로 연락하는 이유는
흑: 목소리를 들으면 더 그립고 자기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될까 봐
화: 시차도 있고 쿠로코가 귀찮아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