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키세 주의
황립 전력 90분 주제 '바다' 받아 썼습니다.
제목을 짓지 못하는 병이라 주제를 그대로^^;
[황립] 바다
바다가 근처라고는 해도 강호교에서 매일 농구에 매달려 있으면 좀처럼 갈 일이 없었다. 카이조 농구부의 여름은 인터하이 8강과 함께 끝나버렸기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바다의 바 자도 꺼낼 수 없기도 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농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가장 승리를 안겨주고 싶은 사람이 3학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이야말로 키세에게 자꾸만 바다를 떠올리게 만들곤 했다.
여름이 물러났을 때 키세에게 손을 내밀고, 몸을 받쳐주고, 어깨를 빌려준 사람은 카이조의 파랑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때 시야에 한가득 밀려들어 와서는 자책감을 한순간에 쓸어가 버린 사람이었다. 뒤늦게 회장을 나온 카사마츠의 눈가에 소금기가 남아있는 걸 보고, 키세는 아, 이 사람은 바다구나 했다. 그래서 이렇게나 먹먹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거구나 하고.
“……세. 키세! 듣고 있냐?!”
“넷?!”
“너 안 듣고 있었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에 뭔가 말을 하고 있었는지 부원들의 시선이 전부 카사마츠와 키세에게 쏠려 있었다. 키세는 하하…… 맥빠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했지만 카사마츠의 뚱한 눈길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뭐, 좋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일은 체육관 보수로 연습 없다. 모처럼의 휴일이니 제대로 쉬어둬. 특히 너, 키세. 요즘 오버 워크 기미니까.”
찔끔 놀라 눈치를 보면 카사마츠는 일단 더는 추궁하지 않고 전달을 마쳤다. 부원들이 전부 흩어지고 나서야 흉흉한 눈초리로 키세에게 다가오는 카사마츠에게, 도둑이 제 발 저린 키세가 선수를 쳤다.
“저 별로 무리하고 있진 않은데요…….”
“너 내일 연습 없다는 말에 무슨 생각했는데.”
“근처 공원이라도 갈까 했는데요.”
“가서 농구할 생각이었잖아. 그게 무리하는 거다, 바보. 조급해할 거 없어. 쉴 땐 쉬어야 부상 위험도 줄어든다.”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아무튼 쉬어! 주장 명령이다!”
“그, 그럼 바다라도 같이 가줄 거예요?”
불쑥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기도 전에 카사마츠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바다? 중얼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려 키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쉬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은데…… 왜 내가 같이?”
“감시, 감시역이에요! 선배가 안 보면 저 분명히 농구하고 말 거라구요!”
“의지박약이냐? 좀 참아보라고!”
“못 참을 거니까 그렇죠! 어쩔 거예요, 같이 바다 갈 거예요?”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키세에게 카사마츠는 습관적으로 발을 들어올리다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에이스가 쓰러져서야 될 것도 안 되지. 대신 괜히 인원 늘려서 일 만들지 마. 피곤하니까.”
“즉 선배는 저랑 둘만 있고 싶다는…… 아팟!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기어이 발차기를 날린 카사마츠에게 황급히 제대로 대답하면, 카사마츠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얼굴로 돌아섰다.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키세와는 정반대의 얼굴이었다.
“바다예요!”
“바다네.”
“바다라구요!”
“그래, 바다네. 저기, 키세. 난 매년 지겹도록 바다 보고 있거든?”
“올해는 처음 아니에요?”
“……뭐, 올해는 처음인데.”
“그럼 좀 더 즐거운 얼굴로 보자구요!”
생글생글 웃는 키세에게 카사마츠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 그만두는 듯했다. 대신 잔뜩 들뜬 것 치고는 수영은 안 하나 보네, 하고 물었다.
“제 백옥같은 피부가 타잖아요! 국가적 손해라구요.”
“아, 그래.”
“그리고 뭐, 에이스가 괜히 감기라도 들면 안 되니까요.”
“……아, 그래.”
같은 대답이지만 조금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올라간 카사마츠를 키세는 놓치지 않았다. 가슴이 벅찼다. 이런 카사마츠를 볼 때마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허우적거릴 여력도 없이 푹 빠져들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바다 그 자체였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보다 더 푸르고, 끝도 없고, 먹먹한.
“좋아해요.”
충동적으로 뱉은 키세의 말에 카사마츠가 어, 나도 바다는 나름 좋아하는데…… 하고 뻔한 대답을 하다 말고 말을 삼켰다. 고개를 돌리다 키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한참을 마주 보던 카사마츠가 말없이 등을 툭 쳐주었을 때, 키세는 왈칵 눈물을 떨궜다. 내 안에 이렇게나 선배가 가득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 안다는 얼굴로 가만히 곁을 지키는 카사마츠를 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키세는 그날 바다에 바다를 하염없이 쏟아낼 뿐이었다.
- END
키세 생일이니 전력 시간은 놓쳤지만 주제 '바다' 받아서 써봤습니다.. 생각지 못한 고백이라 대답 안 했을 뿐 카사마츠는 열심히 고민하고 훗날 제대로 대답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키세 생일이니 해피엔딩이 될 겁니다.. 메리배드성애자지만 내 황립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