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편 이어집니다.
흑우 전력 60분 주제 '재회' 받아 썼습니다.
[화흑] 구면이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 3
“혼자 연습입니까?”
드리블을 하며 막 뛰어오르려던 카가미가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뎠다. 쿵 소리가 날 만큼 크게 넘어진 카가미를 보고 괜찮냐고 묻는 대신 쿠로코는 요란스럽네요,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선생님 때문이잖아…… 요! 다칠 뻔했잖아요!”
“카가미 군처럼 튼튼하면 넘어진 정도로 다치지도 않을 테고, 그 나이대는 다쳐도 금방 나아요.”
“생각보다 거치네요, 선생님.”
카가미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쿠로코를 보았다. 학교에선 셔츠에 면바지, 카디건 차림을 고수하던 쿠로코였지만 지금은 티셔츠와 후드 점퍼, 칠부바지라는 캐주얼한 차림새였다. 퇴근해서 갈아입고 나온 건가? 저렇게 입으니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것 같네. 일어나서 골대까지 굴러간 공을 주운 카가미가 쿠로코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근처 살아요?”
“바로 근처는 아니지만 농구 코트가 있는 공원은 여기가 제일 가깝습니다.”
“농구하러 온 거예요?”
“산책할 겸 혹시 농구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구경하러 왔을 뿐이에요.”
“흐음. 농구 꽤나 좋아하네요.”
“이런 시간까지 혼자 연습하는 카가미 군만큼은 아니죠.”
그러고 보니 어느덧 저물녘이었다. 학교 끝나고 공원에 들러 계속 공을 만지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열중하긴 했다. 카가미는 멋쩍은 얼굴로 스포츠 백에 농구공을 집어넣었다. 그사이 쿠로코는 주변을 둘러보는 눈치였다.
“여기 자주 왔어, 요?”
“고등학교 때까지는요. 보통은 체육관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연습이 부족하다 싶을 땐 왔었습니다.”
“농구부?”
“네. 세이린에…… 아.”
세이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에 카가미가 기억을 더듬으려 했지만, 잠시 말을 멈춘 쿠로코가 다시 말을 잇는 바람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땐 농구 삼매경이었죠.”
“흐음…… 그래봤자 여기 농구는 시시하잖아.”
심드렁한 카가미의 말에 쿠로코는 ‘요’는 어디 갔습니까, 하고 핀잔을 주면서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까마득히 먼 곳을 그리는 것도 같고, 아득한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그립네요. 제가 아는 사람도 그런 말을 했었죠.”
“그거, 전에 웃으면 존재감 없지도 않다고 했다는 사람?”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냥요.”
그때랑 왠지 비슷한 느낌이니까. 카가미가 속으로 말을 삼키면 쿠로코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야성인가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 사람도 농구했어, 요?”
“네. 저도 그저 약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사람은 대단했습니다. 정말로 잘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카가미 군처럼 건방진 시절도 있었죠.”
“건방……!”
“그 사람도 1학년 때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카가미 군도 내년이 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기대된다며 입꼬리를 올리는 쿠로코를 보고 있자니 울컥하면서도 밉지는 않아 복잡한 기분이었다. 옷차림 때문인지 또래와 티격태격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쪽으로 건너와서 친구라고 할 만한 것도 못 사귀었지. 생각하기 싫은 일까지 떠올리고 만 카가미는 주의를 돌릴 겸 말을 꺼냈다.
“그렇게 험담하는 거 보면 그 사람 싫어했어요?”
“설마요.”
의외로 즉답이었다. 쿠로코는 단호한 얼굴로 카가미를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 사람과 함께한 농구가 제일 즐거웠습니다. 늘 저를 지탱해준 빛이었어요.”
빛이라니 간질간질한 표현이었다. 곧장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나를 그렇게 보면서 얘기하면 내 얘기인 거 같잖아……. 어딘지 압도된 카가미가 아, 알았으니까. 하고 가까스로 대꾸하자 겨우 쿠로코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어둑어둑하니 돌아갈까요. 잘 가요, 카가미 군.”
깜박깜박하고 가로등 불빛이 켜지며 돌아가는 쿠로코의 등 뒤를 비췄다. 망부석처럼 서서 그 등을 지켜보던 카가미는 문득 얼굴도 모르는 쿠로코의 ‘그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언젠가 누군가에게 저런 얼굴로 빛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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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특히 짧네요.. 분량으로 속일 수도 없는 역량(ㅋㅋㅋㅋㅋ
마구 날뛰는 불스가미와 달리 교생 쿠로코는 조심스러워서 이야기가 더 짧아지네요^^;
계속 제가 보고 싶은 걸 쓰고 있는데 아마 5~6편쯤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