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면 곧 키요마로의 생일이 찾아 온다. 마계에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에 여름이 지나기 전부터 한껏 들떠 있던 갓슈가 무려 당사자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은 것은 인간계의 9월에 막 접어든 무렵이었다.


"한 달 정도 지방 순시를 다녀올 거야. 변방부터 쭉 돌고 올 생각이야."

"대체 무슨 말인가?! 자네가 마계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훌쩍 떠난다는 겐가?"

"마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가는 거지.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에 마계 사정을 두루 보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번 달은 내가 없어도 문제 없을 것 같고, 역시 이런 건 서류로만 봐서는 와 닿는 게 없거든. 키요마로의 말은 타당했지만 갓슈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오류가 존재했다. 왜냐하면, 이번 달에는 키요마로의 생일이 있으니까. 주연이 없는 생일 파티를 주최하게 생긴 갓슈가 키요마로를 말리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키요마로가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좋은 보좌관이 되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말릴 수도 없지 않은가……! 갓슈는 속으로는 끙끙대면서도 겉으로는 인자한 왕의 얼굴을 보이며 잘 부탁하네, 하고 고개까지 끄덕여주고 말았다. 그리하여 키요마로가 떠난 지 어언 보름이 지나, 그의 생일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키요마로오오~. 왜 빨리 돌아오질 않는 겐가~. 지방 순시는 보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갓슈가 집무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투정을 부리는 것도 보름째였다. 교육을 위해 곁에 선 어스와 감시역으로 붙어 있는 제온까지 무심코 키요마로의 이른 귀환을 빌게 될 정도였다.


"키요마로가 하는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대충, 허투루 하는 법이 없겠죠."

"웃으며 보내준 건 너잖아. 여기서 칭얼거려봤자 그 인간이라면 한 달 꽉 채울 게 뻔하지."

"그치만 이제 곧 생일이란 말일세! 타지에서 쓸쓸하게 생일을 보낼 키요마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

"네 원래 계획을 들으면 홀로 보내는 생일이 다행으로 느껴질걸? 왕성을 전부 풍선과 꽃으로 꾸민 뒤 퍼레이드를 하고 대연회에는 직접 잡아온 생 방어를 메인 디시로 내놓을 거랬나. 네 생일에도 그 정도 법석은 안 떨잖아."

"그래도 키요마로가 여기에서 맞는 첫 생일 아닌가! 모두 즐거워하며 축하해줬으면 좋겠단 말일세."

"그 정도의 연회면 예산 상의 문제도 있고 힘들겠죠. 그도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넌 오늘 중에 이 서류 더미를 처리해야 하고, 키요마로도 지방에 있지. 단념하고 일해라, 갓슈."

"다들 너무하네……."

갓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멈춰 있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빠서야 자기가 키요마로를 찾아간다는 선택지도 실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축하 인사도 제온의 텔레파시를 통해서나 겨우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대하게 축하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갓슈의 등뒤에서 제온과 어스는 슬쩍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순시는 아무래도 키요마로의 계획보다 길어질 듯했다. 각 지역의 개선책과 민원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꼼꼼히 마계를 돌던 키요마로는 왕성이 있는 곳에서 까마득하게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피로를 느낄 법도 했지만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갓슈의 어진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즐겁기만 했다. 장계를 올리기 위해 든 펜을 가볍게 놀리며 키요마로는 문득 달력을 확인했다. 9월 18일. 생일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저녁에는 지역 농민과 소박한 밥상을 함께했다. 임금님을 잘 부탁드린다며 환하게 웃는 마물의 얼굴이 아직도 선했다. 올해 생일 선물은 이걸로 충분하지, 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키요마로는 문득 머릿속을 스친 '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펜을 내던지듯 놓고 급하게 숙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고속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키요마로는 그 모양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슈론! 무슨 일이야?!"

키요마로의 외침에 공중을 크게 선회한 용이 부드럽게 착지하고는 그 거대한 팔을 활짝 벌렸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당황한 키요마로의 눈에 곧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태양과 같은 금색이었다.


"키요마로! 생일 축하하네!"

어릴 적처럼 양팔로 펄떡이는 방어를 꼭 끌어안은 채 웃는 갓슈를 보고 키요마로는 곧 파하하 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어스와 제온, 티오, 우마곤, 칸쵸메까지 방어를 하나씩 안고 온 모습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아앗, 놓쳐버렸습니다!"

"거 봐, 살아 있는 방어는 안 된댔지."

"그보다 키요마로는 방어보다 장어 좋아하잖아!"

"메루메루메!"

각자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에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만큼 크게 웃은 키요마로는 여기까지 일부러 와 줘서 고맙다, 하고 인사했다. 앤서 토커인 자신조차 이 소중함의 무게만은 감히 답을 낼 수 없었다. 아마도 갓슈는 방어보다도 이 행복을 배달하고 싶었을 거라고 키요마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성공이야, 갓슈. 키요마로는 마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렇게 방어가 많아서야 나 혼자 먹긴 힘들겠는데. 여기 사람들이랑 같이 먹을게."

"으음! 맛있게 먹게나!"

"금방 돌아가야 하지? 무리해서 자리 비웠을 텐데."

"갓슈 녀석이 어찌나 투덜대야 말이지. 빨리 돌아와라."

"으음……그게, 사실은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말야."

"그게 무슨 말인가 키요마로!"

"미안. 사실 아직 순시 일정의 1/4도 소화하지 못했거든."

"키요마로오오오!"

비통하게 울부짖는 갓슈를 보며 키요마로는 다만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어보였다.



- END


키요마로 생일 축하해... 아슬아슬하게 18일 지나기 전에 올려서 다행이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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