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 누나 시점 주의

 

 

키세 료타는 물론 예쁘고 귀엽고 잘생겼지만, 그의 작은누나에겐 얄미운 새끼 여우일 뿐이었다. 콩알만 한 게 약아빠져서는 살살 눈치나 보다가 예쁜 짓 한방에 관심을 독차지했고,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면 일부러 엉엉 울며 곤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애교며 엄살은 남들보다 훌쩍 커버린 뒤에도 여전해서, 처음 귀를 뚫고 온 날 아프다고 울상일 땐 저거 저래서 괜찮을까…… 하고 저답지 않게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졌어.’라는 짧은 메시지를 받았을 때에는 또 엄청 징징대겠네, 하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져서인지 다리가 아파서인지, 아무튼 저기압인 건 분명했다. 여름에도 한동안 침울했었지. ‘중학교 땐 매번 이겨놓고는 졌어?!’ 하고 무신경하게 물었을 땐 살벌하게 노려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는 곧 윈터컵인가 뭔가 하는 대회에선 반드시 우승하겠다며 날 밝을 땐 도무지 집에 들어오질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렇게 목을 매고도 졌네, 다리도 절뚝거리고.

그래도 동생이라고 안쓰러운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라, 작은누나는 징징거려도 오늘은 전부 받아줘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상 주방으로 들어오는 남동생의 얼굴을 보자 하려던 위로의 말도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만큼 남동생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귀엽게 칭얼거리고 예쁘게 울던 키세 료타 어디 갔니? 작은누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동생을 응시했다. 엄청나게 분하고, 아프고, 괴롭고, 슬픈 표정이었다. 참혹할 만큼 일그러진 얼굴의 남동생이 낯설었다.


“내년에 꼭 이겨, 응원 갈게.”

진심을 담아 말하자 남동생은 놀란 듯 눈을 마주하더니 이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소리쳤다.


“올해 해냈어야 했단 말야…… 내년에는 그 사람이 없다고!”

그러고는 마침내 펑펑 울어젖히는 것이었다. 조금만 아파도 온갖 엄살은 다 떨던 그 남동생이, 다친 다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그때 알았다. 그렇게 자기만 알던 남동생에게도 이제는 자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는 걸. 대체 누구길래 료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 료타도 다 컸네. 작은누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남동생의 등을 토닥이며 스멀스멀 번지는 미소를 애써 감췄다.


**


겨울이 가고 순식간에 여름이 찾아왔다. 일도 줄이고 농구에만 온 힘을 쏟던 남동생을 응원하러 작은누나는 처음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내년 우승을 선물해달라고 했으니까 힘낼 거야.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엔 퉁퉁 부은 눈으로 웃었던 겨울의 남동생을 떠올리면 응원하는 목소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관중석에는 자기처럼 카이조와 키세를 번갈아 외치는 여자들이 꽤나 많았다. 저 중에 ‘그 사람’이 있을까, 농구부 매니저였을 법한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머리 한구석으로 생각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남동생의 플레이에 환호했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눈에 밟히는 남자의 표정을 힐끔 살폈다. 그 남자는 여전히 세상 심각한 얼굴로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두 자리 건너 앉은 그 남자는 과열된 관중석 안에서 유독 조용했다. 응원하기는커녕 어떤 굉장한 플레이에도 탄성 한 번 지르는 일 없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자기처럼 가족이 선수라서 긴장이라도 한 건가 했다. 그런데 눈빛이 뭔가 달랐다. 밤톨 머리나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엄한 표정과 날카로운 시선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마치 관중석에서 선수와 함께 싸우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응원하러 와서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한테 정신 팔리면 쓰나. 작은누나는 코트에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 큰 소리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


“료타 시합은 어땠니?”

“걔 꽤 멋있더라. 다시 봤어. 프로 노려도 되겠던데?”

“어머, 그러니? 다음에 엄마도 보러 가야겠는걸. 그런데 왜 같이 오지 않고?”

“농구부 뒤풀이도 있는 거 같고, 그냥. 방해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혼자 집에 돌아와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하며 작은누나는 아까 본 장면을 떠올렸다.


시합이 끝나고 관중석을 올려다본 남동생은 눈을 마주치고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설마 진짜 응원 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열심히 박수를 쳐주자 남동생은 민망한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얼굴로, 입까지 헤 벌리고 선 남동생의 시선을 쫓아 작은누나도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아! 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그 남자였다. 경기 내내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물고 눈으로 싸우던 그가,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까까지의 엄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는 상쾌한 얼굴이었다. 다시 남동생에게 눈길을 주자, 남동생은 그새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저게 ‘그 사람’이구나. 저 사람이 료타를 저렇게 멋있게 바꿔놨구나. 그동안 자기가 상상했던 귀엽고 예쁜 매니저와는 전혀 달랐지만 왠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남동생이 저렇게 반짝반짝한 것이다. 남동생의 얼굴을 세상 가장 못난 얼굴로 일그러뜨릴 수 있는 것도, 세상 가장 눈부시게 예쁜 얼굴로 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도 저 사람이라는 걸 작은누나는 직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둘을 인정해주기에는 누나 입장에선 조금 복잡한 노릇이었다.


“……료타가 조금 더 멋있어지면 생각해봐야지.”

선심 쓰듯 뱉은 중얼거림은 바로 얼마 뒤 어떤 시합에서 실현되지만, 지금의 작은누나에게는 알 길이 없었다.



-END



농장판 보고 뽕에 차서 씀..

키세가 2학년 인터하이에서 우승했든 안 했든 카사마츠는 키세에게 웃으며 격려해줄 거라고 생각함.. 가족 네타로 시리어스도 좋아하지만 키세는 누나들한테 치이며 자라도 결국은 사랑받으며 자랐을 것 같아서(ㅋㅋㅋ 밝은 내용도 어울리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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